유전사32. 엥겔브렉트 반란. 칼마르 유니온
The Polish–Teutonic War (1431–1435) was an armed conflict between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Teutonic Knights. It ended with the Peace of Brześć Kujawski and is considered a victory for Poland.
폴란드 튜튼 전쟁. 이때는 아래 보헤미아 후스전쟁 막바지야. 후스전쟁과 같이 끝나.
이 후스들이. 얀후스가 죽고 4년후부터 15년 전쟁을 하는데. 여기서도 뒤에 파가 갈리는겨. 소위 근본주의와 온건주의로.
이걸 영어로 래디컬. 마더레이트. 하는겨.
radical. 이건 개혁 이니가 아냐. 래디컬.은 그 어원이 뿌리야. root.
Origin
Late Middle English (in the senses ‘forming the root’ and ‘inherent’): from late Latin radicalis, from Latin radix, radic- ‘root’.
라틴어 라딕스. 라디크. 뿌리야. 뿌리부터 엎어버리자 걸랑.
무식한겨 애들이. 그 이전 수천년 까지의 인간의 역사를 부정하는 애들이야. 지들의 후짐을 남탓하는 애들이야. 뿌리부터 갈아엎으면 다 만사가 해결될 줄 아는거지.
망상이야 저따위껀. 무식해서 그래 저게.
루마니아. 가 20세기 들어와서야 킹덤을 해. 야 . 가진자꺼 다 뺏아서리 농민들 나눠주자.
개판이 된겨. 또 농민반란 일어나. 왜 니덜만 나눠가져. 내도 줘. 더 줘. 저게 지금 루마니아 가 된겨.
저건 모든 세계사에 공통점이야.
저따위 을 모르는겨 이땅바닥은. 김일성 를 그래서 지금도 존경 하는 들이 있....을지도 몰라 . 미친 들인거지.
가진는 나뻐 뜯어내야해. 그게 종부세야. 상속세 오십퍼 거둬야해 저건 다 부정축재 적폐야.
눈엔 저들 장관이란 것들 요직이란 것들이 저따위 발표질 할때보믄 눈에 불빛이 . 저따위 거짓 분노에 치민 들이 이땅바닥 장관에 당의 요직이야.
한심한겨 저게.
moderate. 보통의 중간의 적당한
Origin
Late Middle English: from Latin moderat- ‘reduced, controlled’, from the verb moderare; related to modest.
온건주의자가 돼. 그게 적당하고 적정한겨. 라틴어 모데라트. 거짓 망상이 줄은겨. 먼가 통제가 된겨. 여기서 모디스트. 온후함이 나와. 관용이 나오고
적폐 적폐 지난 십년 정권의 방송도 적폐.
저건 증말 미친 야 저건.
modern. 현재 . 지금
Origin
Late Middle English: from late Latin modernus, from Latin modo ‘just now’.
모데르누스. 모도. 바로 지금. 저건 말야. 컨트론 된 애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금 현재야.
래디컬.은. 현재 모던을 사는게 아냐. 트라이브. 야만으로 가는겨 저게.
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자주로 승리떨치는 주체의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을 통해 정치적 자주성을 강조했다. 신문은 “주체의 조국, 사회주의조선은 혁명과 건설을 자주적으로 당당하게 해나가고 있으며 자체의 힘으로, 자기식으로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을 이룩해나가는 나라로, 높은 국제적 권위와 영향력을 지닌 자주의 성새로 그 위용을 높이 떨치고있다”
기사입력 2018-09-03 16:11
사회주의. 절대 못버리지 저들. 저따위 애들과 먼 통일이니 통일은. 통일이 평화냐 통일이 지상 과제냐. 통일이 안돼서리 이나라가 더 못사는거냐.
판문점 선언을 비준하면 평화가 서냐. 그따위 비준 약속이 평활 보장하냐. 평화가 경제냐. 쟤들과 합치면 대강국이 되냐. 저들이 변한게 머냐. 아 우리네도 사회주의 빨고 싶냐.
저따위 미친 야만 들이 없어.
의미없는 조약. 선언. 거기에 왜 목메다니. 유럽애들 역사를 봐라 그따위가 무슨 상관이냐 인간사에. 그럴수록 국방력이나 더 길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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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말야. 후스애들이 저 근본파와 온건파가 나뉘는겨. 이 온건파가 카톨릭쪽에 붙어. 근본파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를 부르는겨. 저때 요가일라.가 아직 살아있을때야. 저 후스전쟁과 튜튼전쟁이 끝날때 요가일라 가 죽어.
Jogaila ( Jogaila), later Władysław II Jagiełło (

)[nb 1] (c. 1352/1362 – 1 June 1434) was the Grand Duke of Lithuania (1377–1434) and then the King of Poland (1386–1434), first alongside his wife Jadwiga until 1399, and then sole King of Poland
요가일라. 나중에 개명을 하는겨 야기에워.로. 해서 이사람을 브와디스와프2세 야기에워. 해. 해서 이 인간부터 왕조를 이백년 가까이 이뤄. 그걸 야기에워 왕조. 해.
근본파 후스가 이 야기에워.에게 당신이 왕 하라는겨 보헤미아의.
당시 보헤미아의 왕은 룩셈부르크 가문이 4대째인 마지막 지기스문트.야 . 이 인간은 헤드위그 언니 헝가리 마리와 결혼한 인간이야. 즉 보헤미아킹에 로마황제에 헝가리크로아티아 왕 인겨. 이 지기스문트 와 야기웨어 는 동서 지간인겨. 서. 가 사위 서야. 장인입장에서 큰사위 작은사위 같은 사위야.
이 둘이 보헤미아에서 결국 싸우는겨 이게. 보헤미아에서는 온건파 후스가 지원한 카톨릭이 이기고. 폴란드 튜튼전쟁은 근본파 후스가 지원한 폴란드 야기웨어 쪽이 이겨.
이 후로 온건파 후스가 카톨릭과 협상을 해. 해서 2백년간 잘 지낸겨 후스는. 카톨릭에서 후스를 인정해 줬어. 헌데 2백년 후에 합스부르크가 오면서 이 페르다난도. 가 황제도 오르면서. 여길 다시 카톨릭을 쎄게 씌우는겨. 해서 후스들이 반발한게 독일 30년 종교전쟁이야. 이 전쟁은 결국 합스부르크가 이긴..것 보다도 이후도 삼백년 합스부르크야. 후스들이 이때 싸그리 죽는겨. 그게 20세기에 다시 티나온게 지금 체코슬라바키 처치야. 얘들이 후스야. 몇만명 안돼.
저때 근본파 급진파인 후스들이 폴란드로 가는겨 또한. 여기서 야기에워에 반대하는 애들에게 얘들이 싸워. 즉 저 보헤미아의 후스전이 국제전이 되는겨 이게.
저때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사촌지간인 야기에워와 비타우타스.가 내전하다가 승부안나고 연합을 했어. 이때부터 두 나라는 같이가 4백년을. 저기에 또한 소외된 이가 있어
Švitrigaila (before 1370 – 10 February 1452) was the Grand Duke of Lithuaniafrom 1430 to 1432.[2] He spent most of his life in largely unsuccessful dynastic struggles against his cousins Vytautas and Sigismund Kęstutaitis.
스비트리가일라. 다 사촌지간이야 서로. 저 둘과도. 얘가 리투아니아의 비타우투스. 자릴 빼앗으려는겨. 반란 하는거지. 투옥도 돼. 그러다 비타우투스가 죽어. 먼 핏줄이 승계해. 얘들과 계속 싸우는겨 .
여기에 튜튼 기사단.이 이 스비트리가일라.에게 붙어. 여기에 로마황제이자 보헤미아 왕인 지기스문트.가 지원을 하는겨.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근본급진파 후스와 연합했어 보헤미아 후스전쟁에. 이 후스들이 또한 폴란드 가서. 야기에워 를 돕는겨.
저때의 폴란드 튜튼 전쟁은 폴란드 와 급진파 후스 연합이 이긴겨. 이 후스들이 그래서 폴란드 리투아니아에 스미는겨 이게. 얘들이 지들 고향 보헤미아에선 졌어.
헌데 이 튜튼의 땅을 보면 당시. 저 폴란트 튜튼 전쟁 이전에.
이전에 거창하게 폴란드 리투아니아 랑 싸우고. 다음 헝거전쟁으로 성안에서 굶주리기도 했지만 말야.
The Teutonic state in 1410
저게 헝거 전쟁 전인데. 저 프러시아 의 상징 쾨니히스베르크. 지금 칼라닌그라드. 의 뻘건색에서. 쟤들이 1410년. 즉 여기 와서 백년 동안 포메라니아 동쪽. 브란덴부르크 쪽도 일부. 에다가 오른쪽으론 저 위 리보니아 땅까지 얘들이 다 갖고 간겨 이게. 리보니아 십자군들이 얘들과 섞인겨. 음청난겨 이 튜튼애들. 그러니 폴란드랑 리투아니아.가 재들 때메 연일 끙끙 앓는겨. 갑툭튀로 오더만 야금야금 다 먹는겨 저 발트해변을
저 후스전쟁때 막판에 한 튜튼전쟁 이후에 다시 13년 전쟁을 해.
Teutonic state in 1466
13년 전쟁하면서 폴란드에 서쪽 땅을 다 뺏겨. 가운덴 바르미아 주교령이 들어서. 이건 튜튼께 아니야. 위로는 사모기티아 땅도 다 리투아니아 땅이 돼.
이 13년 전쟁으로. 150년 동안 날고 긴 튜튼애들이 쇠하는겨. 해서 뒤에 마르틴 루터.의 조언으로 폴란드 에서 듀크 하사받고 폴란드 밑으로 들어가서리. 나중에 독일 땅을 통일하는 숨고르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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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들이. 온건파 들이 카톨릭 편들고 저기서 나름 자리를 잡아. 2백년 동안. 종교전쟁 터지기 전까지. 근본파애들은 폴란드 리투아니아에서 이기고 여기에 스미는겨.
마르틴 루터가 백년 후에 이 후스들을 알게 돼. 자기 종교개혁이랑 전혀 내용이 다르지 않아. 루터가 놀래
The appearance of Martin Luther was hailed by the Utraquist clergy, and Luther himself was astonished to find so many points of agreement between the doctrines of Hus and his own. But not all Utraquists approved of the German Reformation; a schism arose among them, and many returned to the Roman doctrine, while other elements had organised the "Unitas Fratrum" already in 1457.
우트라키스트. 우트라키즘.이 후스들의 한 가지야.
the Four Articles of Prague that Jakoubek had formulated: (1) freedom of preaching; (2) communion in both kinds; (3) poverty of the clergy and expropriation of church property; (4) punishment of notorious sinners.
얀후스.의 후사이트 들이 프라하에서 주장한게 단지 네개야. 설교의 자유를 달라. 두 종류의 코뮤니언. 이건 그 화체설. 빵과 포도주.를 같이 해야 한다는겨 예배식때. 어딘 하나로만 막막 하는데 그럼 안돼 하는겨. 그리고 성직자의 검소와 교회재산 몰수. 나쁜는 좀 벌을 줘라.
저게 후사이트 분들의 주장 이야. 저기서 2번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우트라키스트. 저 후스들이 루터보다 대 선배님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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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루터는 그리 종교개혁 어쩌고 하지만. 말년에 수년간 온갖 병으로 고생 하다가 죽어. 귀도 멀고 눈도 멀고 환청 들리고. 관절엔 류마티스 오고 심장도 별로고 신장도 죽어가다가 고생 하다가 죽어 병으로. 침대에서 죽지만.
중대갈들은 옛 글 보믄 다들 앉아서 뒈졌다는데. 옆에서 본 적이 없으니 걍 그리 간줄 알아야지 머. 헌데 최근에 간 애는 암 걸려서리 나 병원서 안죽을텨 내 절에 데려다 줘 해민서리 가고
석가모니께서도 만두 잘못 드셔서리 배 아프셔서리 가셨구만. 하물며 니덜은 먼데 편히 앉아서 가냐 그래덜.
공자.의 자로는 . 장조림이 되서리 배달이 돼. 젓갈로. 저게 유교야 유교 . 저때 유교는 없어져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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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덜이 말야. 니덜만의 이념질로. 수많은 인간들을 죽인겨 니덜이.
편히 갈 수가 없어 그래서.
걍 혼자 산속 쳐 박혀 들어가서리. 조용히 앉아서 얼렁얼렁 가. 애덜 혹 하게 엮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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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중에서 가장 개 는 마르크스. 레닌.
저 개 이야기에 여전히 저따위 이념로 21세기에 권력 놀음 하는 들이 있으니. 북조선 들은 대놓고 저하기야 하지. 어디는 몰래. 사민주의 대민서리 아닌척 .
들 도 저따위 들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을 . 니덜이 죽이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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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gelbrekt rebellion was a rebellion in 1434–1436 led by Swedish miner and nobleman Engelbrekt Engelbrektsson against Eric of Pomerania, the king of the Kalmar Union. It resulted in the deposing of Eric and the erosion of the union
스웨덴.의 엥겔브렉트 반란.
Engelbrekt Engelbrektsson (1390s – 4 May 1436) was a Swedish rebel leader and later statesmen. He was the leader of the Engelbrekt rebellion in 1434 against Eric of Pomerania, king of the Kalmar Union.
스웨덴에서 광산 오너야. 귀족이고.
The Kalmar Union or Union of Kalmaris[citation needed] (Danish, Norwegian and Swedish: Kalmarunionen; Latin: Unio Calmariensis) was a personal union that from 1397 to 1523[1] joined under a single monarch the three kingdoms of Denmark, Sweden (then including most of Finland's populated areas), and Norway, together with Norway's overseas dependencies (then including Iceland, Greenland,[N 1] the Faroe Islands and the Northern Isles).
칼마르 유니온. 칼마르. 가 스위덴 남동부 해변 도시 이름이야. 그 건너 건너에 고트족에들 섬 고틀란드가 있어.
저때 스웨덴이 덴마크랑 마주하는 양 해변은 덴마크 땅이야. 독일30년전쟁 까지는 덴마크가 저기서 제일 쎄. 그 이후는 스웨덴.이 저기 대빵이야. 스웨덴이 30년 전쟁의 힘으로 더 뻣대기 넓히기 하다가 러시아에 쳐맞은겨. 핀란드도 그래서 떨어져 나간거고.
.스웨덴은 이전에 킹인 형이랑 두 동생간의 전쟁. 기엉나냐 . 형이 두 동생 무서워서리 몬살게 굴다가 동생 둘이 대들고. 이때 덴마크는 형편 노르웨이는 두동생편. 형이 지고 깨갱하다가 형이 두동생 초대하고 그 두동생은 암살당하고. 해서 그 마누라 둘이 사람들 불러서리 킹인 형을 내쫓아. 이때 둘째 에릭.의 아들 마그누스.가 스웨덴의 킹 이 돼. 얘가 노르웨이 공주와 결혼하면서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유니온 이 되는겨.
그리고 나서리. 덴마크.랑 합쳐. 주인공은 덴마크야. 이걸 칼마르 유니온 이라해. 130년 간겨 이게. 그리고서리 덴마크 다내든 꼬라지 못보는 스웨덴이 떨어져 나가고. 덴마크 노르웨이.가 19세기 까지 같이 가는겨.
저 칼마르 유니온때 말야. 그 위의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꺼야. 스투룰룽 가문.이 반란 한 거 기엉나냐. 그 아이슬란드 위의 그린란드.는 덴마크 꺼야. 지금 그린란드.도 덴마크 땅이야. 아이슬란드는 독립을 했어.
.저 칼마르 유니온. 이 나온걸 보믄. 역시 또한 핏줄이 끊기면서리 합치는겨. 또옥같아 이게.
Olaf II Haakonsson (1370 – 23 August 1387) was King of Denmark as Olaf II (1376–1387) and King of Norway as Olaf IV (1380–1387).
저 에릭의 아들 마그누스. 가 스웨덴 노르웨이 킹을 해. 얘가 아들 둘을 낳아. 첫째가 스웨덴 킹. 둘째가 노르웨이 킹. 헌데 첫째가 자식없이 죽어. 둘째가 스웨덴킹을 겸임해.
이 둘째가 낳은 아들이 저 올라프 하아콘손. 이야.
이때 마침 덴마크.도 핏줄이 끊긴겨. 얘 엄마가 덴마크 공주였걸랑. 이 올라프.가 덴마크 킹으로 가는겨 어린애가.
헌데 또 아빠가 죽었어. 아빠는 노르웨이 킹에다가 스웨덴 킹을 겸임 했잖아.
일단 노르웨이 킹을 받아. 스웨덴은. 이거 원래 죽은 형자리 동생이 잠깐 맡은거다. 해서리 다른 가문이 이어가. 헌데 이 이어받은 애가. 귀족들이랑 재산문제로 틀어져. 귀족들이 얠 왕자리에서 내쫓아.
헌데 리. 저 올라프 도 죽은겨 쟤가 나이 17세에. 결혼을 안했어.
세 나라 핏줄이 싸그리 끊긴겨.
이때 저 자리를 꿰찬 사람이. 저 올라프.의 엄마야. 이 남편이 마그누스의 둘째였고 노르웨이 킹에 스웨덴 킹 형자리 받고. 자식이 받은 덴마크.
Margaret I (Danish: Margrete Valdemarsdatter, Norwegian: Margrete Valdemarsdatter, Swedish: Margareta Valdemarsdotter, Icelandic: Margrét Valdimarsdóttir; 15 March 1353 – 28 October 1412) was queen consort of Norway (1363–1380) and Sweden (1363–1364) and later ruler in her own right of Denmark, Norway and Sweden, from which later period there are ambiguities regarding her specific titles.
이여자가 덴마크의 마가렛.이야 아빠가 원래 이 여자 아들에게 덴마크 킹을 준겨. 아빠 킹이 아들이 있었어. 즉 이여자 오빠. 일찍 죽었걸랑.
해서 이 여자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의 여왕 이 되는겨. 아들 죽은 1387년에 퀸. 저 스웨덴의 잠깐 했다 쫓긴애의 해가 1389년. 해서 1389년이 저 칼마르 유니온.의 시작이야.
이여자도 과부에. 자식 하나 달랑 있는거 죽어서리 이어받았으니 당근 자식이 없어. 이때 양자로 들인 애가.
Eric of Pomerania KG (1381 or 1382 – 24 September 1459) was the ruler of the Kalmar Union from 1396 until 1439, succeeding his adoptive mother, Queen Margaret I.
포메라니아의 에릭. 그 포메라니아. 야. 덴마크 반도 오른쪽. 튜튼애들이랑 접하는. 얘가 다음 왕이 돼. 저 세 나라의. 얘때 벌어지는 반란이 저 엥겔브렉트 반란.이야
저 포메라니아의 에릭.이 아주 역사적인 걸 하나 만들어.
Perhaps King Eric's most far-ranging act was the introduction of the Sound Dues(Øresundtolden) in 1429, which was to last until 1857
이전에 썰했던. 북해와 발트해를 가르는 덴마크를 통과하는 곳이 세 곳이라 했을때. 그 중심이 헬싱보리.야 코펜하겐 맞은편.
얘가 만든게 사운드 듀즈.라는 바다 통행세야. 얘가 이걸 1429년에 만들어서리. 이게 4백년이 간겨. 이전에 있던걸 아주 강하게 제도화한겨.
저 헬싱보리.가 지금 스웨덴이지만 이때는 덴마크 땅이었걸랑. 얘가 만든 저 통행세.로 덴마크가 돈이 무지 쌓여. 특히 이때부터 30년 전쟁까지의 힘은 전적으로 얘 덕이야 ㅋㅋㅋ.
30년 전쟁끝나고 1600년 대에 저걸 스웨덴이 완전히 저 스칸디나비아 땅을 갖고가. 지금의 스웨덴. 해변이 이전엔 덴마크걸랑. 해서 스웨덴애들이 저 통행세를 걷는겨. 이게 짭짤해.
헌데 반면에 말야. 저때부터. 저 스웨덴 노르웨이 의 상인 농민들이. 저게 세금이걸랑 또한. 이걸로 들고 일어난겨. 저게 저 광산소유한 귀족의 반란이야.
이때문에 또한 덴마크의 칼마르 유니온 과 한자동맹이 전쟁을 하는겨.
The Dano-Hanseatic War from 1426–1435 (as was the Kalmar War with the Hanseatic League) was an armed trade conflict between the Danish dominated Kalmar Union (Denmark, Norway, Sweden) and the German Hanseatic League (Hansa) led by the Free City of Lübeck.
저게 리스트 에는 없지만. 저 전쟁의 이슈는 저 에릭이 만든 통행세야. 저 와중에 터진게 저 스웨덴 귀족의 반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