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史

유럽사249. 30년전쟁 19. 룩셈부르크, 발루아

didasko 2020. 1. 3. 19:32

헝가리 아르파드.가 서기 895년에서 서기 1301년에 끝나고

보헤미아 프레미슬리트.가 보지보이 876년에서 1306년에 끝나고. 

폴란드 피아스트.가 미에스코 960년에서 서기 1370년 카미시르 대제로 끝이나.

 

헝가리.는 벨라4세의 먼 핏줄.로 보헤미아 프레미슬리트.와 바바리아 비텔스바흐.가 서로 킹하다가, 이게 나폴리 앙주의 샤를.이 가져가. 샤를의 아빠가, 나폴리 킹 샤를, 카를로2세.의 장남인데 일찍 죽어. 나폴리 킹은 차남 로베르토.에게 가고, 카를로2세의 부인이 헝가리 스티븐5세(벨라 4세의 아들)의 딸이야. 할머니 핏줄로 헝가리 킹을 하고, 이 헝가리 앙주 샤를이 폴란드의 엘리자벳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헝가리 앙주 루이대제.이고, 폴란드 카시미르로 피아스트 끊겨서 폴란드 킹.을 겸하다가, 딸 둘만 남기고 죽어. 작은딸 헤드위그가 리투아니아의 야기에워 시작 요가일라.와 결혼해서 폴란드 리투아니아가 엮이기 시작하고, 큰딸 마리.는 헝가리에서 룩셈부르크의 지기스문트랑 결혼해서 보헤미아랑 헝가리가 엮이게 돼. 두 여자는 이십대에 다 죽고. 

 

헝가리에 나폴리 앙주 샤를에 루이대제 이을때, 보헤미아는 고리치아 Gorizia 와 합스부르크가 다투다가 이걸 룩셈부르크 가문이 갖고 가서, 헝가리 마리를 통해 헝가리와 엮이게 되는데. 

 

그래서, 보헤미아 라는 체코.와 헝가리를 이야기할때 이놈의 룩셈부르크.를 뺄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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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룩셈부르크 가문의 이 룩셈부르크 란 땅이 플랑드르와 함께 피곤한 지역인데. 가운데 땅 로타링기아가 엮여서 말야. 

 

장남 로타르.가 이탈리아와 로타링기아를 받고 황제를 하고. 세 아들이, 루이2세 로타르2세 샤를. 이야. 루이가 황제에 이탈리아 킹. 어린 로타르가 로타링기아의 킹. 막내 샤를.이 프로방스의 킹. 

 

875, 869, 863. 셋이 죽는 해야. 윗세대 삼촌 서프랑키아 킹 대머리샤를.은 877.에 죽어. 게르만 루이 876. 장남 로타르가 855에 죽어. 

 

장남 로타르 855에 죽고, 자식들 삼형제중 장남 루이2세(할배 경건 루이가 1세) 황제가 20년 재위에 나이 50에 죽은거고, 두 동생은 20대 10대에 죽은건데. 장남 루이2세 이탈리아 킹에 황제는 딸을 하나 남기고, 둘째는 비합법적 자식들만 낳고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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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aty of Prüm, concluded on 19 September 855. 프륌 조약. 855년. 

 

로타르1세.가 나이 60인 서기 855년에 죽는데, 죽기전에 아파서 프륌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여기서 세 자식 루이2세, 로타르2세, 샤를. 에게 땅을 나눠주는겨. 루이2세에겐 황제.에 이탈리아 킹. 차남 로타르2세에게 로타링기아, 막내 샤를에게 저지대 부르고뉴에 프로방스. 

 

프륌.이란 곳이. 지금 룩셈부르크 북쪽 끝에서 라인강까지의 얕은 산맥의 왼쪽에 있어. 이 산맥이 Eifel. 아이플 산맥이야. 이이플 산맥.이 지금 위 베스트팔렌. 아래 라인란트팔라틴.과의 경계야. 아이플 아래 에 코블렌츠.가 있는겨. Hunsrück 한스퀴크 산맥이 이 아래있고 라인팔츠 지역이 한스뤼크 아래였고. 아이플 과 한스뤼크 사이로 모젤강.이 코블렌츠로 흘러가는겨. 

 

막내 프로방스 킹 샤를이 죽어. 서기 863년. 샤를의 땅 중에 저지대 부르고뉴.를 로타링기아 로타르2세.가 갖고, 프로방스를 이탈리아 킹이자 황제 루이2세.가 갖아. 저때 저지대부르고뉴는 브장송에 혼느강 줄기인 리옹, 비엔.에 그 하류줄기를 포함해. 

 

The Treaty of Mersen or Meerssen, concluded on 8 August 870,  

 

메르센 조약 870년. 미어센 이라는 지금 네덜란드 림부르크 Limburg 에 있는 도시인데. 서기 869년에 로타링기아 로타르2세가 죽어. 대머리 샤를이 저걸 다 취하려 하고, 메스 Metz 에서 대관식을 해. 게르만루이가 열받아하고 니 머하능겨 나눠야제. 

 

저때 마지막 남은 조카 루이2세 황제.는 아래 바리 Bari 땅의 슬람이들 정벌하러 가느라고 바쁜거야. 이 바리.가 지금 푸이야 에레지오니 Puglia(영어 아풀리아 Apulia)의 수도야. 푸이야 주.가 긴 장화 무릎에서 뒷굽까지야. 

 

The Emirate of Bari was a short-lived Islamic state ruled by Berbers.[1][2][3] It was ruled from the south Italian city of Bari from 847 to 871. It was the most lasting episode in the history of Islam in peninsular southern Italy.  

 

이 바리.가 서기 847-871 슬람이 땅이었던겨. 시칠리아의 슬람이 시대가 831–1091. 샤를마뉴 죽고 경건루이가 알프스 위에서 바쁠때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족 슬람이들이 시칠리아를 260년간 지배하면서 해적질을 하는거걸랑. 이걸 지우는게 노르만애들인거고. 쟤들 중세 지중해 해적질이 어마어마한겨 이게. 얘들은 해적질 하다가 세월 다 보내고 지금 저리 허섭하게 사는건데. 

 

샤를마뉴가 롱고바르디를 아래로 내몰고, 이 롱고바르디 애들이 로마와 스폴레토 아래에 정착한게 베네벤토 야. benevento. 베네벤토 왼쪽 해변이 아말피.에 나폴리.이고. 장화 발가락과 뒷굽과 함께 아래 해변은 비잔틴의 땅이고. 이 외 내륙은 이 베네벤토.야. 이들은 프랑크 애들에게 하미지를 하는겨. 그러다 이 베네벤토에서 살레르노 Salerno 가 독립해서 나가. 살레르노 라는 프로빈차.가 나폴리 아래 지역이야 지금. 지금 여기가 캄파니아 주.의 살레르노 프로빈차.이고 여기에 또한 살레르노 란 도시가 있고,  캄파니아 주의 수도는 나폴리야. 캄파니아 주 아래 발가락 발등 주.가 칼라브리아 주.이고

 

루이2세는 저 바리 의 이슬람 지우러 가고, 로타르2세의 로타링기아.를 삼촌들인 대머리샤를.과 게르만루이.가 나누는거야.

 

룩셈부르크.라는 나라가. 지금 2600 제곱키로가 쪼금 안돼. 길이 상하 직선이 칠팔십키로야. 인당 지디피가 10만달러가 넘어, 카타르 다음인데. 수도가 룩셈부르크 시티.야. 남쪽 가운데에 있어. 

 

아래 베르됭 Verden 과 메스 Metz 를 잘봐야해. 뫼즈강 Meuse 강이 베르됭지나 왼쪽 위로 저 숙 들어가는 벨기에 프랑스 국경을 만들며 흐르고, 모젤강 Moselle 강이 아래 낭시.에서 메스.를 지나서 룩셈부르크.와 독일 국경을 만들면서 트리어 Trier 로 가서 코블렌츠 Koblenz 의 라인강으로 가고. 룩셈부르크 시티 바로 위를, 좌우로 평행하게 수평으로, 벨기에 알론 Arlon 쪽에서 룩셈부르크 시티 위를 지나서 트리어의 모젤강.으로 가는 강이 Sauer 자우거 강이야. 

 

프랑스쪽에서 룩셈부르크시티 의 자우어강.으로 Alzette 알제트 강이 흘러. 이게 룩셈부르크 남부 좌우 를 가르는 강이야.

 

룩셈부르크 맨북쪽 정가운데에서 Clerve 클레르베 강이 흘러 내려오고, 이게 Wiltz 빌츠 강이랑 만나서 아래 자우어 강.으로 흘러. 클레르베 빌츠 알제트.가 이게 룩셈부르크.를 정확하게 좌우를 가르는 강줄기들이야. 

 

Our 우르강.이 벨기에 에서 나와서 룩셈부르크와 독일을 경계하는 국경선 강이야 이게 죽 흘러서 트리어.의 모젤강 과 만나.

 

조카 루이2세 황제이자 이탈리아킹이자 프로방스킹.이 바리.에 슬람이들 지우러 갈때, 삼촌 둘인 대머리샤를과 게르만루이.가 지들끼리 로타르2세의 로타링기아를 나눠먹는게 메르센 조약 870년 인데. 저 룩셈부르크의 클레르베 빌츠 알제트 강으로 정확하게 룩셈부르크 를 나눠먹는 선을 그리는거야.

 

Division of the Frankish Empire after the Treaty of Meerssen in 870.

 

대머리샤를.이 혼느강 까지 갖고 가는겨. 리옹.에 비엔 Lyon, Vienne. 요 왼쪽까진 막내 샤를땅을 이은 로타링기아 의 로타르2세 땅이었걸랑. 더하여, 브장송.도 갖고와 이 브장송이 부르고뉴 백작령의 수도야. 부르고뉴 공작령땅은 원래 대머리샤를 꺼였고.

 

베르됭 Verdun 지나는 강이 뫼즈강이고. 오른쪽 똑같은 위도에 메스 Metz 가 있어. 모젤강이 흘러가. 이 사이부터 반을 가르는겨 정확하게 룩셈부르크 좌우 정가운데를 가르고 죽 가서, 리에주(Luttich 뤼티히) 의 뫼즈강 하류선.따라서 라인 하류에 만나는 지역 안쪽을 대머리샤를.이 갖고가. 저 리에주로 감아도는 뫼즈강 안쪽이 메로빈지언.의 살리안 프랑크 시작인거고. 

 

즉 모젤강 상류의 낭시.에 메스.는 게르만 루이.의 나중 신성로마제국 땅인거야 저때부터. 서기 870년. 

 

뫼즈강 발원하는 시작쪽이. 부르고뉴 공작령에 Morvan 모르방 산덩어리가 있어. 9백미터 산들이야. 여길 축으로 저지역이 고원지대야. 저짝 뫼즈강 상류쪽이 또한 고원이고, 모젤강 상류가 보주 산맥이라는 알자스 남부로 여기도 고원이고, 저기서 발원해서 서쪽으로 파리로 세세한 강줄기들이 흘러서 그게 센강 Seine.이 되는겨. 이 프랑스란 나라는 산들의 나라야 이게.

 

서기 870년 에 나뉜 저 차남 로타르2세.의 로타링기아.가 히틀러 월드워 더 세컨드 까지온겨. 

 

유럽 역사란게, 거대한 한 축이 저놈의 로타링기아.인거야. 프랑스와 독일은 1100년이상이 웬수의 관계야. 그것도 아주 지독하고도 지독한. 저 독일을 또한 대신하는게 스페인이야. 뜬굼없이 부르고뉴의 마리가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언을 신랑으로 선택하고 여기서의 자식 미남왕 펠리페.가 스페인의 후아나.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와 스페인이 아주 웬수중에 웬수가 되는거고. 

 

저런 애들도, 지금 서로 웃으면서 격려하면서 잘 살아.

 

세상에 별 같잖은 것들이 열등감에 쩔어서 영원한 숙적 어쩌고, 이제부턴 절대 일본에 지지 않겄습니다. ㅋㅋㅋ. 그야말로 저건 정신병인데 진짜. 

 

기괴한거야 기괴한거. 정말 기괴한 집단 정신병이야. 민족주의 가 후진 나라의 공통점인데, 그야말로 세상빠닥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추악한 조선 민족애들이, 자기들이 위대한 조선의 민족이라며 민족주의 를 회복합세다 믄서 저러는건 그야말로 참으로 기괴한거야 저건. 전쟁만 나면 토끼고, 자기 민들 노예로 오백년 부리고, 자기민들 이민족이 노예로 가져가도 38년만에 오는 민을 지들이 중앙코트에서 돌려보내고. 전쟁만 나면 도망가고, 마지막엔 그냥 주권을 넘기고.

 

세상 인류사에서 말야. 정말 저런 별 후짐들은. 이건 인간의 역사 수메르이후, 저런건 없걸랑.

 

 

헌데 시안하게, 또 지들이 위대하대. 그리곤 일본이 불구대천지 원수가 돼. 저 유럽들의 원수질은 그럼 대체 어느정도여야 하는겨 대체. 조선 오백년 애들의 일본에 대한 증오감 이어야 하면, 대체 유럽 들은 어느정도 서로를 적폐라며 분노를 조장해야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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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말이지. 로타링기아의 로타르2세.에겐 자식들이 있었어. 1남 2녀.인데, 배스타드. 정식결혼하고 낳은 자식들이 아닌겨. 이건 살리크법으로 후계자가 될수가 없어. 카롤린지언들도 이걸 이어 가는겨. 같은 살리안 프랑크들이었으니까. 

 

 

알자스 공작 위그. 프리지아의 바이킹 곳프리와 결혼하는 기셀라. 아를 백작과 결혼하는 베르타. 인데. 이 셋이 다 배스타드.여 후계권이 없어. 

 

게르만 루이.가 배스타드.인 위그.는 당시 15세였고, 알자스 땅의 영주였는데, 이걸 그냥 유지해준거고, 하미지를 동프랑키아에 하는거지.

 

저 세남매가, 그래도 억울할거잖오. 아무리 살리크법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걍 눈뜬 체로 다 뺏긴거걸랑. 각각 나이들이 15세 7세 5세 일때 할아버지들이 갖고 간거야. 다 커서 갖고 오려는겨 이걸. 

 

위그.가  여동생 기셀라.가 시집간 바이킹 곳프리와 연합하는겨. 저때는 게르만루이의 장남 카를로맨 차남 어린루이 죽고 막내 뚱땡이 샤를이 전체킹에 황제할때야. 뚱땡이가 곳프리를 죽이고, 위그는 유배를 보내.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둘이 나눌때 프리지아.를 게르만루이가 가져갔지만, 저때는 바이킹 시대 시작이야. 저긴 바이킹들의 땅이야. 실제 주인은 바이킹이지만 문서상 게르만루이가 갖고 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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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루이.와 대머리 샤를.이 연이어 죽고. 프로방스 킹을 하는게 보소.야 서기 879. 위의 고지대 부르고뉴 킹 겔피.의 루돌프가 888. 이 두개가 합쳐서 아를 킹덤이 돼. 서기 933. 고지대 부르고뉴의 다음 아들 루돌프2세 킹이, 보소로 부터 프로방스를 받는거야. 이미 창업자들 보소와 겔피.가 결혼으로 맺었걸랑. 보소의 위그.가 이탈리아 킹.을 자처하고 겔피의 루돌프2세가 프로방스를 받으면 니가 이탈리아킹 하라.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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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o (or Boson"the Elder" (c. 800 – 855) was a Frankish Count of Turin and Count of Valois of the Bosonid dynasty.  

 

프로방스의 킹 되는 보소.의 시작은 토리노의 마크.이자 발루아 백작이야. 발루아 가 나중 카페가 끊기고 방계 발루아의 필립6세가 킹 하면서 백년전쟁 시작하는건데. 이 발루아 란 곳은 Oise 와즈 강.의 피가르디 지역이고. 와즈강 이란건 벨기에 몽스 Mons 가 수도인 에노에서 발원해서, 파리에서 루앙으로 가는 센강 으로 가는 강이고. 이 강계곡 중류가 발루아.야. 발루아 오른쪽으로 스와송 Soissons. 랑 Loan. 이고 위쪽에 아미엥. 이 있어. 이 사이가 발루아여. 지금은 걍 촌동네고. 

 

보소.가 토리노.에 프로방스의 영주들인겨 이 핏줄이. 여기 딸이 또한 로타르2세 로타링기아 킹.에 시집을 갔지만 이여잔 자식을 못낳은거고. 

 

Bivin of Gorze (810/830–863) 더하여. 고르즈.의 비빈.에게 보소 의 딸이 시집을 가. 이 비빈.도 보소로 보는겨 여자핏줄로. 여기 아들이 프로방스 킹덤을 세우는 보소.야. Boso. 이 핏줄이 부르고뉴 공작령을 갖고 가고. 

 

부르고뉴에 프로방스가 이 보소들의 땅이었어 원래. 대머리 샤를 죽고 킹덤 올린거고. 이들이 토리노 마크 니까 또한 이탈리아 킹에 뛰어드는거고. 보소.가 결혼한 여자가 루이2세.의 딸이야. 이걸로 이탈리아 킹에 황제 하는거고 이 아들이 장님 루이.이고 이브레아.의 베렝가르.와 황제 쟁탈하면서 서로 잇다가,  다음 이탈리아 킹.이 위 겔피 루돌프2세.와 보소의 위그.가 쟁탈할때 이 보소의 위그.는 창립자 보소의 직계 핏줄이고, 이사람이 루돌프2세에게 프로방스 땅주고 자기가 황제에 킹 행세하려던거

 

 

겔피와 보소의 핏줄들이 아를 킹덤이 되고, 이 지역에, 이제 스페인쪽 바르셀로나의 카탈란들이 오는거야. 여긴 이미 레콩퀴스타를 했어 무슬림이 아래로 내려가고, 결혼으로 저쪽 프로방스로 들어가는 가문들이 카탈란의 바르셀로나.에 툴루즈.야. 그러다가 카탈란들은 노르망디가 아랍애들 260년 만에 내몬 시칠리아.를 시칠리아 만종으로 갖고 오는거고.  프로방스를 갖고 가는건, 성루이 동생 카페앙주의 샤를.이야 결혼으로. 이 샤를.이 프리드리히2세 죽고 나폴리 킹덤을 세우는거고. 나폴리의 카페앙주들이 프로방스도 주인이 된거고, 이 앙주들의 땅으로 아비뇽 교황정이 서고, 다음의 로마와의 교황정 분리 일때도 나폴리의 앙주 조안나가 아비뇽 교황을 스폰하면서 캐어해주는거고. 그리곤 저 앙주를 나폴리 조안나가 발루아 앙주.에게 주는거고, 나폴리는 발루아 앙주 르네 에게 갔다가, 약혼남 코스프레 시칠리아의 아라곤 알폰소.에게 먹히고. 알폰소는 아라곤의 주앙2세 형이고. 주앙2세의 아들 페르디난도2세가 카스티야 이사벨라랑 결혼하는거고. 알폰소는 나폴리 시칠리아 킹하다가, 적법 자식없어서 시칠리아는 페르디난도2세에게 주고, 나폴리만 자기 안적법자식에게 주고 하다가 샤를8세부터의 이탈리아 전쟁에 루이12세가 페르디난도 꼬셔서 너 왜 저 나폴리를 배스타드 사촌이 먹냐 나랑 나눠갖자 해서리 옳거니 하고 나폴리 까지 갖고오는거고 프랑스는 바보짓하고 이탈리아 전쟁 머한거냐  하는거고.

 

아 이래다간 한도 끝도 없고.

 

해서 하튼 저짝 아래 프로방스는 저렇게 프랑스것이 되는겨. 저기에 사보이.이야긴 또 따로 해야 하고. 저 니스.란 땅도 저게 이탈리아 꺼였걸랑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직전까지. 참 프랑스는 어영부영 싀안하게 땅이 넓어진건데.

 

프로방스.를 보더라도, 시작이 보소.걸랑. 보소가 시작이 발루아.와 프로방스야. 

 

카페앙주 시작이 성루이 동생 샤를이고 나폴리 킹덤도 같이 가져가고 이게 조안나까지 가는데. 이다음이 발루아 앙주의 루이.여. 장2세의 아들이걸랑. 장2세는 발루아 앙주 킹 필립6세의 아들. 이 필립6세의 아빠가 발루아 앙주.의 시작 발루아의 샤를.이야 

 

발루아 앙주 시작 샤를. 핏줄로, 필립6세의 손자 발루아 루이.가 저 프로방스를 갖고 오는겨. 발루아.가 프로방스.를 같이 했던 보소.의 역사.때문에 나폴리 카페앙주 조안나.가 저 발루아 앙주 루이.에게 줘야만 했던거고.

 

이 발루아 앙주 루이.가 형이 샤를5세고. 루이가 아빠 장2세랑 흑태자 전쟁 프와티에 전투로 포로되서리, 인질로 잡히고 아빠 킹은 풀려나고, 얜 탈출하고, 아빠 열받아서 약속 어기고 아들 탈출해서 쪽팔리 하미 런던 자진해서 들어가고, 할때 이 루이의 동생이 용감공 필립.이라는 발루아 부르고뉴 시작이고 이들이 이전 루돌프가 지배하던 고지대 부르고뉴를 다 먹는겨. 

 

발루아.에 뭔 기빨이 좋은게 있나봐 보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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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mburg-Luxemburg dynasty, one of several families from different periods known as the Luxembourg dynasty (FrenchMaison de LuxembourgGermanHaus Luxemburg) was a royal family of the Holy Roman Empire in the Late Middle Ages, whose members between 1308 and 1437 ruled as King of the Romans and Holy Roman Emperors as well as Kings of Bohemia (Čeští králové, König von Böhmen) and Hungary. Their rule was twice interrupted by the rival House of Wittelsbach.  

 

 

룩셈부르크.는 림부르크-룩셈부르크 조.가 서기 1308-1437년 인데. 서기 1354년.에 듀크.로 승격이 되걸랑. 저 가문일때에 하인리히7세 황제가 나오고, 카를4세 황제.에 지기스문트 황제 가 나오걸랑. 여기가 보헤미아 프레미슬리트 조.의 딸이 결혼하면서 보헤미아 킹을 하는겨. 아빠 황제 하인리히7세 빽으로. 

 

Henry VII (GermanHeinrich; c. 1274 – 24 August 1313)[2] was the King of Germany (or Rex Romanorum) from 1308 and Holy Roman Emperor from 1312. He was the first emperor of the House of Luxembourg

 

하인리히 7세.가 황제되는게 서기 1312년.이야. 프리드리히2세 황제가 1250년 죽고 62년 만에 교황이 황제 대관식을 해준겨. 저때 교황이 아비뇽 교황정 1309년 시작하는 클레멘스5세.여. 프랑스 필립4세의 품속으로 기들어간. 필립4세가 자기가 황제 겸하긴 거시기 하고, 짝은 가문 룩셈부르크 백작.을 자기 꼭두각시로 앉힌거고, 교황이 승인해줘야 하는 시절이었어. 그리곤 필립4세도 죽고 교황 클레멘스5세도 죽고 같은해에, 자크 드 몰레 템플러 기사단장 화형시킨 저주인지 어쩐지 간에. 프랑스 킹들 줄줄이 죽고 끊겨서 발루아 앙주 필립6세 선다고 잉글랜드가 백년전쟁 하는기고, 할때 교황 요한 22세.가 등장하고, 저 하인리히7세도 바로 죽어 다음해에. 완전히 다시 교황 세상이 된겨 아비뇽 처 기들어가서. 또 황제랑 세속권력 다툼질 하고, 할때 말야, 

 

다음 황제는 비텔스바흐 의 루이4세.인데. 하인리히7세의 아들 카를4세가 어리걸랑. 이사람은 아빠 빽으로 보헤미아 여자와 결혼해서 보헤미아 킹을 했던거고. 

 

루이4세.는 교황이 죽고, 자리 빌때 아헨 가서 대주교 불러서 대관식해서 황제 한거걸랑. 그리곤 교황 요한22세가 연일 욕질하는거고. 이 다음이 하인리히 아들 보헤미아 킹.의 자식 카를4세 고 이 아들 지기스문트 가 황제자릴 이어가고 또한 보헤미아 킹을 하고, 또한 이사람은 헝가리 마리랑 결혼했으니 헝가리 킹도 하는거걸랑. 

 

엉겁결에 듣보잡 룩셈부르크.가 세상의 중심이 된거야 이게. 

 

그리곤 보헤미아.는 지기스문트 사위 핏줄로 합스부르크가 온거고, 얘가 게르만의 킹.만 하고는 오스만이랑 싸우다 죽고. 아들 뱃속에 있을때. 그래서 훗사이트.가 킹하다가 헝가리 마티아스랑 전투하다가 마티아스가 죽고, 요걸 야기에워 브와디스와프.가 보헤미아와 헝가리 킹을 하게되고, 이걸 막시밀리언이 또한 결혼으로 자기 손자녀를 엮어서 뒤에 헝가리 보헤미아가 합스부르크 것이 되는 거걸랑. 

 

저 듣보잡 룩셈부르크.가 저기서 엮인건데.

 

The House of Ardenne (or Ardennes, French Maison d'Ardenne) was an important medieval noble family from Lotharingia, known from at least the tenth century. They had several important branches, descended from several brothers:[1]

이 림부르크-룩셈부르크 가문.이 1308년 부터 130년 짧고 굵게 거쳤지만. 서기 922년 부터. 룩셈부르크 꺼여 저게. 5백년이 저들 핏줄껀데. 

 

Elizabeth of Luxembourg (7 October 1409 – 19 December 1442) was queen consort of GermanyHungary and Bohemia.  

 

룩셈부르크 실질 마지막이. 엘리자벳.이 합스부르크 의 알베르트와 결혼하는 여자걸랑. 애기 뱃속에 있는데 오스만이랑 전쟁한다고 죽은. 게르만의 킹. 타이틀로. 그리곤 자식도 킹노릇 못하고 걍 지는겨 이 가문은. 이전에 낳은 딸이 야기에워 창업자 요가일라.의 손자인 폴란드 킹에 리투아니아 대공작.에게 시집가서 부인이 되지만. 이 엘리자벳의 딸은 합스부르크 이어가는겨 저짝 동쪽에서. 

 

룩셈부르크.땅을, 저 일찍죽은 게르만의 킹 합스부르크 알베르트에 시집가고 남편죽고 별볼일 없어진 엘리자벳.이, 부르고뉴의 현명공 이라는 필립.에게 뺏기다 시피 한거걸랑. 얘가 이여자에게 돈 빌려주고 그러다가 걍 내쫓아서 룩셈부르크 땅을 갖는겨 이게. 그리고선 현명공 딱지 붙여준건데 프랑스들이. 더 굿. 어쩌고를 일본애들이 현명공 하는거고. 그리곤 저 룩셈부르크는 발루아 부르고뉴 4대에 마리에 가서 합스부르크가 갖고 간겨 저걸. 저게 돌고 돌아서 네덜란드 아부지 오렌지 낫사우 가문이 가져가서리, 지금 룩셈부르크 대공작.은 이 낫사우 가문이야. 

 

할때 저 시작이. Cunigunda (c. 893 – aft. 923) 쿠니군다.의 자식들이고. 이 쿠니군다.는 대머리샤를.의 아들 말더듬 루이.의 딸.의 딸이야. 아빠가 프리울리 지역 귀족이고. 이 쿠니군다.의 신랑이 로타링기아의 첫 팔츠그라프.인 위거릭.이여. 

 

이 위거릭.이 로타링기아.의 실세인겨. 저때는 로타링기아 가운데 지역이, 대머리 샤를 죽고 말더듬 루이.죽고 두 아들 연이어 일찍 죽고, 뚱땡이 샤를이 다 지배하고, 다음 말더듬 루이의 어린 심플 샤를이랑 이 아들 루이4세.가 띄엄띄엄 잇다가 위그 카페로 가는거걸랑. 

 

대머리 샤를 죽고, 저 로타링기아는 말야, 게르만루이의 동프랑키아.가 더 갖고 가는거야. 대머리 샤를이 그은 가운데가 점점 왼쪽으로 밀리는겨. 그러면서 동쪽은 작센 오토가 들어서면서 저 로타링기아를 확실히 갖고 오는거걸랑. 위그 카페와 오토 작센.이 프랑스와 독일의 각각 정체성의 시작이야 저게. 

 

저때는 위거릭 이 로타링기아 팔츠그라프 라는건 동프랑키아에는 작센 오토의 아빠 헨리.가 게르만의 킹.이 될때고 자식 오토가 이어 게르만 킹에 황제가 되는 시기걸랑. 저긴 게르만애들꺼인거야 동쪽에. 

 

저게 서기 922년 위거릭과 쿠니군다의 자식들인 삼형제가 로타링기아를 갖고가는겨. 지그프리트 부터 룩셈부르크.는 갖고 가는겨 이 가문이. 이들이 고지대 저지대 로타링기아 지역들을 많이 갖고 간거고. 이걸 오토가 황제되서 동생인 대주교에게 줬다가 나눠주고 고지대 저지대 로렌으로 나뉘는건데.

 

투 더 훠얼 넥스트.